▲ 안병일 = 글로벌사이버대 뇌교육융합학과 겸임교수 & 행정학박사. © 김현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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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대림동 주취자 경찰폭행 사건 과정에서 여경 대응논란이 언론엔 뜨거운 감자다.
아울러, B클럽 사태 및 故 장자연 사건 등의 수사발표가 검경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했다는 고위층의 한 인터뷰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한번쯤 돌아서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
현대사회서 경찰에 대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국민을 계몽하고 지도 또는 강제하는 국가의 특수행정작용의 의미로 제도상의 경찰을 뜻하는데 보통 경찰행정기관에 의해 관장되는 모든 행정작용을 의미한다"라 서술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광복 직후인 1945년 10월에 미군정청 소속으로 경무부로 창설되었다가 1948년 8월 정부수립 때 내무부 치안국으로 격하되어 중앙엔 내무부 산하에 치안국이 설치됐고 지방엔 시‧도 경찰국이 경찰국 산하엔 경찰서를 설치했다.
아울러 여경은 1946년 경무부 공안국에 여자경찰과가 신설되면서 탄생됐는데 당시엔 여경 간부15명과 1기생 64명으로 출발하여 성매매와 청소년 업무를 주로 처리했다.
그 후 1991년 5월엔 경찰법이 제정되어 경찰의 조직‧기능‧운영에 새로운 기틀을 마련하였으며 내무부의 외청으로 경찰청이 설립됐다.
또한 시‧도에 지방경찰청을 설치하였고 경찰행정의 의사결정 기관으로선 경찰위원회가 설치됐다.
'천재학습백과'에는 "경찰은 국민의 생명‧재산 등을 보호하는 동시에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는 일 또는 그 책임을 맡은 조직을 의미하는데 사무를 보는 관청을 경찰서라 칭하고 그 일을 맡아보는 공무원을 경찰관이라 한다"라 명시하고 있다.
경찰관은 모든 국민들이 마음 놓고 편하고 명랑하게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 필요한 모든 일을 맡아 보고 있는데 경찰관의 계급은 ▲ 치안총감 ▲ 치안정감 ▲ 치안감 ▲ 경무관 ▲ 총경 ▲ 경정 ▲ 경감 ▲ 경위 ▲ 경사 ▲ 경장 ▲ 순경 등의 순으로 돼있다.
2003년도에 조선시대 좌포도청에서 다모로 일했던 여자 채옥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다모”가 방영된 적이 있다.
다모(茶母)란 용어가 우리 역사서에 처음 표기된 것은 태종연간(1418년)인데 실록엔 (중략)이사문이 장흥고(물품 등을 관리하던 관청)의 다모와 간통하였으므로 사헌부에서 잡아서 가두었다(중략)라 하고 있다.
여기서 다모는 관청에서 차와 술대접 등 잡일을 맡던 관비를 의미하고 있다.
이를 증빙할 수 있는 사료로는 세종실록(1443년)에서 볼 수 있는데 (중략)최덕강 등이 문묘(공자의 사당) 앞 장막에서 다모(茶母)로 하여금 노래를 부르게 하고 술을 마시는지라(중략)라 말하고 있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아울러, 성종실록(1471년)엔 (중략)의녀의 고강(考講-배운 것을 어느 정도 통달했는가를 시험하는 것)은 점수가 많은 3인에게 급여를 주고 3달 이내에 세 번 불합격한 자는 혜민서의 다모(茶母)로 소속시킨다(중략)라 한 것을 보면 다모는 혜민서에 속한 관비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같이 다모는 관청에서 차와 술대접 등 잡일을 맡던 관비를 의미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다모가 작금의 여성경찰과 비슷한 역할은 언제부터 했을까?
숙종실록(1701년)을 살펴보면 (중략)나를 이끌고 포도청의 다모간(茶母間-다모들이 거처하는 곳)으로 가서(중략)라 한 것을 보면 다모들이 숙종 시기엔 일반관청이 아닌 포도청에 소속돼 있었다.
아울러, 정조실록(1793년)엔 (중략)나를 병영으로 붙잡아 가더니 도적이라며 한 차례 따져 신문한 뒤에 비장청의 다모방(茶母房)에 구류시켰다(중략)한 것으로 보아 다모들이 정조 시기엔 비장청(무관인 비장이 사무를 보던 곳)에 소속돼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볼 때 다모제도는 처음엔 관청에서 차와 술대접 등 잡일을 맡던 관비에 불과 하였으나 1700년경에 현재의 여성경찰과 비슷한 역할을 가지고 포도청‧비장청 등에 소속되어 여성 피의자의 몸을 수색하거나 여성의 방 등을 수색하는 등 여성 범죄를 담당하였던 것으로 생각되어진다.